조선 후기의 학자인신홍원의 시문집이다.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신만화 (申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신성우(申聖遇), 할아버지는 신해종(申海宗)이고, 아버지 신사덕(申思 德)과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경주 이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태어나서부터 자주앓아 조부가 이불 속에서 품고 길렀는데, 8, 9세에 이미 『소학(小學)』․사서 (四書)․사기(史記)․고문(古文) 등을 통달하였고, 문구(文句)에도 능했다. 광뢰이야순의 문하에 서 수학하였으며, 정재 류치명․허전․이충립(李忠立)․류치호(柳致皓)․서선응(徐善膺) 등과 교유 하였다. 슬하에 5남으로 신정호(申鼎鎬)․신성호(申成鎬)․신재호(申在鎬)․신병호(申秉鎬)․신경호 (申京鎬)를 두었다.
이 문집은 1963년 증손인 상효(相孝)가편집, 간행하였다. 잡저의 「고금문평(古今文評)」은 중국의 고문으로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글을 시대 순으로뽑아서 그 장단점을 설명하고 다른 글과 비교하면서 우열을 평론한 것으로, 글을 짓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설(說)의 「숙흥야매설(夙興夜寐說)」에서는 천지의 동정은 언제나 자축에서 시작하여술해에서 끝나기 때문에 그날 의 시작이 새벽에 있으니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농사짓는 사람 모두가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의 좋은 기회를 모두잃어버린다고 하면서 일찍 일어날 것을 강조하였다.
「칠정잠(七情箴)」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이므로 원레선(善)하고,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은 정(情)이 발하는 것이므로 절도에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는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기질은 원래 청탁후박(淸濁厚薄)의 다른 점이있음을 강조하였다. 또 자기가 경험해본 결과 노(怒)와 욕(欲)을 제거하기가가장 어렵다고 지적하였다.